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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일상

나홀로 크리스마스

영국 정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런던을 포함한 잉글랜드 남부의 거의 모든 지역의 경계단계를 오늘부터 4단계(Tier Four)로 상향한다고 사실상 2주간의 긴급 봉쇄령을 내렸다.

 

어제 하루 영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사람이 534 명이나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최근 발견된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잉글랜드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갑자기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다른 지역인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와 웨일즈 지역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영국 잉글랜드 지역 경계 4단계 (Tier Four)

 

그래서 그동안 존슨 총리와 영국정부가 국민들에게 누누이 약속했던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3집이라도 모여서 가족끼리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계획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모두 취소된 것이다.

오늘부터 런던을 포한한 영국 잉글랜드 남부 지역은  영국 최대의 명절인 크리스마스 기간을 포함해서 2주 동안 마트나 필수 시설 이외에는 영업이 전면 금지되고, 일이나 교육(등교)을 위한 목적 이외에는 실내에서 모이거나 외출이 금지되었다. 모든 학교들은 이미 지난 금요일에 크리스마스 방학에 들어갔으니 사실상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가는 사람들이랑 재택근무가 어려워서 직장에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만 외출이 허락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영국 잉글랜드 북부 지역의 경우 아직까지는 경계단계가 3단계 (Tier Three)이지만 우린 올 크리스마스에 시댁 식구들과 만나지 않고 각자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이미 결정을 했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다음 날 (Boxing Day)이라도 집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밖에서 잠깐 유리창 너머로 한 30분 정도 시부모님 얼굴이라도 보러 아이들과 함께 시부모님 댁을 방문하려던 계획도 이젠 포기해야할 듯하다. 다행히 크리스마스 선물은 지난주에 다 택배로 보내드렸지만 그동안 못 뵌 시부모님을 이 번에 잠깐이라도 뵐 수 있겠다던 희망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영국에서 전면 봉쇄로 록다운이 내려졌던 지난 3월 이후로는 다른 지역으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여행이 금지되어서, 파킨슨 질환을 몇 년 째 앓고 계신 시아버지를 홀로 모시고 있는 시어머니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안부 전화나 온라인 쇼핑을 대신해드리는 것 밖에 별로 없었다.

 

지난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잠시 록다운이 완화되었을 때도 아이들이 일주일 동안 자가격리를 한 뒤에 집안의 창문을 모두 열어 두고 한 번 식사를 같이 한 것이 올해의 전부다. 요즘 시어머니는  통화를 하실 때마다 점점 더 쇄약 해져 가시는 시아버지 때문에 너무 늦기 전에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잠깐이라도 얼굴이라도 보자고 말씀하신다. 서로 마스크를 쓰고 마당에서 한 30분이라도  얼굴을 보자고 하시지만, 그나마 시아버지가 그렇게 오래 앉아있을 만큼 기력이 될지도 모르신다고 걱정이 많으시다.

 

 

영국의 가장 큰 명절 크리스마스

 

 

영국 정부의 갑작스러운 이번 발표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지난 3월에 봉쇄령이 시작된 이후로 많은 가족들이 서로 만나지 못했고, 영국의 최대 명절인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제한 된 숫자이긴 하지만 그나마 잠깐이라도 만날 수 있겠다던 희망이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 중에 어머니가 치매 때문에 요양원에 계시는 분이 있다. 그 분 어머니는 그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면회를 오던 딸이 안전상의 이유로 2주에 한 번 밖에 면회가 허락되지 않고, 그나마 유리창 밖에서만 면회가 허락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시니까 딸에게 자꾸 안으로 들어오라시며 결국 헤어질 때마다 우시는 모습을 보이신다고... 그래서 면회를 가는 것이 오히려 어머니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가 해서 걱정이 많이 된다고... 그분은 이번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미리 코로나 검사를 해서 면회 전에 음성으로 판정 나면 어머니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사실 우리 주변에는 연로하신 부모님의 안전을 생각해서 우리처럼 이번 크리스마스엔 아쉽지만 각자 명절을 보내기로 한 집들이 많다.

그리고, 혹시라도 부모님의 건강이 별로 안 좋은 집들은 더 늦기 전에 이번 크리스마스라도 부모님을 안전하게 뵙기 위해서 벌써 지난 주부터 미리 자가격리에 들어간 집들도 많다. 우리 아이들 학교 친구들 중에도 크리스마스 때 연로하신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 아이들을 학교에 등교시키지 않고 미리 2주간의 자가격리에 들어간 집들이 꽤 있다. 참고로 영국은 이렇게 무단결석을 하는 경우 학생 일인당 결석하는 날마다 매일 60파운드의 벌금을 부모가 내야 한다. 

 

 

2020 영국 크리스마스 & Home Alone

 

 

그리고 일부 가족끼리 이번 트리스마스에 모이기로 미리 한 달 이상 계획을 한 집들은 대개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먹을 음식들을 이미 거의 다 사다 놓은 상황이라서, 이렇게  가족 모임이 취소되면 아마도 그 많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고민이 될 것이다. 반면에 가족 모임에 가서 며칠 묵을 생각으로 냉장고도 비우고 크리스마스에 먹을 식료품을 전혀 사놓지 않은 사람들은 내일부터 당장 식료품 구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집에 가기 위해 예약한 기차표도 취소해야 할 것이고, 가족들 주려고 사놓은 크리스마스 선물도 이젠 외출이 금지되었으니 내년에 록다운이 해제될 때까지는 사실상 직접 전달할 방법이 이젠 전혀 없다.

 

 

 

요즘처럼 현실이 오히려 더 영화처럼 느껴질 때...

 

어제 저녁 준비를 하면서 영국 정부의 긴급 봉쇄에 대한 발표를 듣는데, 문득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난 1월 말에 중국 우한에서 들려오던 이름 모를 바이러스에 대한 뉴스가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한국이나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고는 그땐 전혀 상상도 못 했었다.

한국의 가족들이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면서 우리 가족들도 조심하라고 3월 초에 KF94 마스크를 한 상자 보내줬을 때도 난 그저 지구 반대 편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그 며칠 뒤에 한국에서는 마스크 수요가 모자라서 KF94 마스크의 수출이 금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영국에서도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국의 록다운이 지난 3월 말에 시작된 이후로 우리의 일상이 너무나 달라졌다.

 

  • 록다운으로 외출이 금지되면서 마당에 세워 둔 남편 차의 배터리가 올해 들어 벌써 3번이나 방전되었다.
  • 3월 이후로는 친구들 모임이나 외식을 해 본 기억이 없다.
  • 식료품은 배달되는 즉시 살균제로 다 한 번씩 닦아주어야만 좀 안심이 된다.
  • 사람들을 못 만나다보니 화상통화나 문자를 하는 횟수가 많이 늘었다.
  •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을 땐 날짜나 요일의 개념이 모두 없어진다.  가끔 밤과 낮시간의 경계 역시 무너진다.
  • 불면증이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한국에 있다면 정상인 시간 때...ㅋ
  • 외출복보다는 하루 종일 편한 복장으로 있는 시간이 늘었다.
  • 텔레비전의 뉴스를 하루 종일 보다 보면 세상의 종말이 곧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다.
  • 텔레비전을 끄고 뉴스를 안 들으면 순식간에 온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 느낌이다.
  • 생각이 많아진 반면,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집중력은 떨어진 느낌이다.
  • 시간이 아까와서 모든 일에 자꾸 조바심이 난다.
  • 친구들과 심각한 이야기는 서로 애써 피하려고 하다 보니 대화의 내용이 별로 없을 때가 많다.
  • 친구들과 어떻게 보면 필요 이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맘 속 이야기까지 가끔 하다가 반나절을 보내기도 한다..... (어제도 록다운으로 남편이 재택 근무를 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혼자 울 수도 없어서 더 힘들다는 친구랑 통화를 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사업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자신의 문제로 더 힘들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말이 적어졌다는 그 친구... 그녀는 어느날 쇼핑을 하고 짐에 돌아오는 길에 길 옆에 차를 세워 두고 혼자 한 시간 넘도록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근데 한참을 울다가 왜 갑자기 울음이 터졌는지 그 구체적인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 그 친구가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끝까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면서 들어줬다.... 사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으니까... ) 
  • 그리고 록다운 동안 집에 있다 보니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 영상 편집을 연습하면서 배우기 위해서 유튜브에 레시피 영상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이 생각보다 무척 재미있다. 
  • 요리 블로그도 따로 시작해서 음식 레시피도 올리고, 새로 시작한 유튜브 영상 제작 과정에 대한 뒷 이야기를 시간나는대로 천천히 올리려고 한다.
  • 록다운 기간 동안 집에 있으니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느낌이다.

 

Life Goes On... 

 

 

그런데 며칠 있으면 벌써 크리스마스라니...

 

2020년 어떻게든 견뎌내고 살아남은
모든 이에게 축배를... 

 

Life goes on...
ind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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