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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일상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요즘...

첫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한동안 친하게 지내던 학부형이 있다.

서로 사는 곳이 가깝다 보니 학부형 모임에도 자주 같이 나가고,

가끔 서로 집에도 초대해서 차도 같이 마실 정도로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그녀는 학부형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학교 운영위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사교성도 좋고 말을 워낙 재미있게 잘해서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그녀는 지역의 병원이나 호스피스를 위한 모금 마련 행사도 적극 주도했다.

아이들 등하교 길에 그녀가 다른 학부형들과 모여서

큰소리로 웃고 있는 광경을 보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생일 파티에는 항상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런 그녀 덕에 다른 학부형들과 꽤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과 폭넓은 사교성은

다소 내성적인 내게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끝낼 무렵 그녀의 절친에게서

그녀가 갑자기 심해진 우울증 때문에 다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한 사연은 잘 모르지만 사실 항우울제도 몇 년째 계속 복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항상 밝고 행복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모습 때문에

그녀가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내가 한국에 있었을 당시에는

우울증에 대해서 공개적으나 

사회적으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보니 

별로 인식하지도 못했고 이해도 잘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영국에 와서 보니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울증은 그냥 한 번 지나가고 마는

마음의 감기라기보다는

일종의 난치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증상인 것 같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것들과의 투쟁으로 고분군투하는 중이다. 그들에게 친절해라. 항상.'

 

 

위의 말처럼,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각자의 삶에서 힘겹게 견디면서

극복하기 위해 다루어야만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우울증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가족 문제일 수도 있고,

건강 문제일 수도 있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이유로

그런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거나 감추고 있기에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거나 모르고 있을

그런 인생의 복잡한 문제들...

 

 

우리 집 큰 딸 아이가 좋아하는 BTS...

지난 2018년 한해 동안 세계 각국의 아미들에게서

엄청난 사랑을 받으면서 각종 수상을 하던 그 해 연말...

이제는 초기의 어려움을 잊고 

그저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던 방탄소년단...

 

그런 그들이 2018년 연말 MAMA 시상식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다.

그들이 차례대로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진 (Jin)은 사실 그 해 초에  멤버들이 너무 힘들어서

이제 과연 해체를 해야 할까에 대해서까지

고민했었단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 말을 옆에서 듣고있던 다른 멤버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해체를 생각했을만큼 힘들었던

그 시간 동안 전혀 내색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얼핏 우리의 시선으로는 

그저 행복하고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미처 크게 소리 내어 읽지 못하는 

그들의 인생의 한 페이지들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알지못하는 수도 있다. 

 

요즘은 더욱 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 한마디라도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더구나 최근 영국에는 판데믹 현상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야했던 사람들도 많고,

갑자기 직장을 잃었거나

사업을 접어야했던 사람들도 많고,

장기간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보니

우울증이나  무기력감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고 있다.

 

특히 사회의 취약계층에게는 이번 일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가 더욱 가혹한 것처럼 보인다.  

 

예전 같았으면 별로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는데

요즘에는 어쩌면 내가 별 뜻없이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화가 나거나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과 통화를 하거나 하면

내 말이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지 않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혹시라도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너만 힘든거 아니야. 다들 힘들어해.' 라던가 

막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라는 말보다는 

그냥 옆에서 그들이 털어놓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내 맘대로 함부로 판단하거나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옳은 소리를 하거나 비판하려는 사람들은

어차피 세상에 이미 충분하지 않나 싶다.

물론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