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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문화

BAME...영국에서 요즘 자주 거론되는 신조어

영국 내에서만 이제까지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사망자가 벌써 4만 3천 명이 넘었는데, 개인적으로 주원인은 영국 정부의 총체적인 실패라고 생각된다.

 

최근 영국의 코로나 관련 사망자들 중에는 특히 고령자의 사망률과 유색 인종의 사망률이 유난히 높아서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조사에 착수했었는데, 이 현상을 설명하면서 영국 정부에서  'BAM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youtu.be/VTr29p4H4TE

BBC News : BAME coronavirus deaths: What's the risk for ethnic minorities? (출처: 유튜브)

 

BAME (비에이 엠이 또는 '베임'이라고 발음함)은  요즘 영국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용어인데, Black, Asian, and Minority Ethnic을 줄여서 만든 것이다.  즉, 최근 영국에서 흑인, 아시아인, 그리고 소수 인종들을 모두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즉 백인들과 구별해서 Non-White라는 의미처럼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다. 

 

 

영국에서 무의식적으로라도 차별적인 발언으로 오해의 소지를 살만한 용어들을 사용하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black, colour, 등의 용어는 되도록 꺼리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칠판 같은 것을 blackboard라고 부르는 것조차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불편해한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인종차별의 이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 정체성이나 종교 등의 광범위한 영역에 해당된다.

 

이렇게 차별적인 요소의 여지가 최소한 없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Political Correctness (PC)라고 하는데, 예전에 별생각 없는 단어들이나 표현들이 시대가 변하면서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므로, 혹시라도 차별의 요소가 있다면 다른 용어로 바꾸어 왔다.

 

예를 들어 아직도 husband/wife, girlfriend/boyfriend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많은 영국 사람들이  'partner'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하는 경우가 그 예이다. husband, wife, girlfriend, boyfriend 등의 용어들 속에는 결혼의 유무나 동성 커플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의 요소가 있을 수도 있다는 배려 때문이다.

 

또, 이곳에서는 서류를 작성할 때도 성별을 표현할 때,  선택사항에 남성(male), 여성(female) 뿐만 아니라 Non-binary, 또는 Rather not say (언급하고 싶지 않음) 등의 선택 사항도 있다.  

 

Non-binary(논 바이너리)는 현대 사회에서 성별이나 성 정체성을 굳이 남성이나 여성으로만 나눠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인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최근에는 자주 볼 수 있다. 즉, Non-binary는 자신이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전혀 다른 제3의 성(gender)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자신의 성 정체성이 때에 따라 변하는 사람들 (gender fluid), 또는 자신은 아예 성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agender), 그리고 아예 이런 용어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전혀 다른 성 정체성이나 여러 개의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선호하는 용어이다. 

 

 

또, 혹시라도 현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여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라고 묻고 싶다면,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인종차별적인 질문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될 수도 있으니까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만약 부모님이 영국으로 이민 왔기 때문에 영국에서 태어나고 교육받고, 영국 국적을 가진 사람인데, 단지 그 사람이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라고 물어보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왜 오해의 소지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알고 지내다 보면 물어보지 않아도 자연히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될테니 불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낼 사이가 아니라면 더욱 물어 볼 필요가 없는 질문이지 않을까? 굳이 그런 것이 궁금해서 꼭 물어보고 싶다면 어느 정도 대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What's your cultural (or ethnic) background?'라고 물어보는 것이 그나마 좀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적인 질문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안 물어보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는 한 난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궁금해 하지도 않은 편이다.

 

***

 

어쨌든, 영국 정부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로 유색인종 집단의 사망률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이 BAME이라는 용어 역시 어떤 면에서 보면 black 같은 용어들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political correctness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좀 혼란스럽고 애매모호한 생각이 더 든다. 

 

만약 BAME이라는 용어가 흑인, 아시아인, 그리고 소수 인종의 지역사회를 통칭하는 말로 사용된다면,  내게는 오히려 White British (영국 국적의 백인들)과 구분해서 백인이 아닌 사람들 모두를 따로 떼어서(othering) 보려는 의도가 더 있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 영국에 사는 흑인들 사이에도 문화적, 지리적, 인종적 배경이 굉장히  다양하고, 아시아에도 동남아시아인들, 한국, 일본, 중국 같은 여러 가지 지역의 차이가 있다. 

 

더구나 미국에서 사용되는 Asian이라는 단어의 의미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Asian은 대부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사람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은 대개 Far East Asia로 따로 구분하고, 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대개 Chinese, Japanese 등의 용어로 일반적인 Asian이라는 용어와는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서 소수 인종들이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이는 적도 있다. 예를 들어 병원이나 치과에 가면 아래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류 뒷부분에 자신이 어느 인종에 해당되는지를 작성하는 난이 있는데, 난 내가 그 어느 범주에도 해당하지 않아서 항상 기타 인종이라고 표시를 하게 된다.

 

내가 어떤 인종인지 선택해야하는 순간... 난 해당되는 곳이 없다.  그래서 내 대답은 항상 외계인인걸로... ㅎ

 

난 도무지 BAME이라는 단어 속의 소수 인종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소수 인종의 '소수'가 어느 정도의 숫자인지에 대한 정의조차 분명하지 않다. 그냥 다 뭉뚱그려 BAME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 속에 백인이 아닌 여러 인종들을 한꺼번에 모두 억지로 꿰어 맞추는 느낌이다. 난 분명히 백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BAME에 해당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내가 미국에 살면서 목격한 인종차별, 영국에서의 인종차별,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종차별의 종류나 형태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또 항상 흑인들만이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항상 백인들인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백인들이 인종차별을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하는 것처럼, 나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처럼 한국 내에서 인종차별을 받아 본 경험이 전혀 없이 성장했다. 그래서 내 개인적인 경험이나 태도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들과는 어쩌면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인종차별의 경험이 없이 한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에 살면서 혹시라도 내가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지않을까하는 걱정도 물론 있었지만, 동시에 내가 무지하거나 또는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동안 당연히 받아들여왔던 일들이 이 곳에서 혹시라도 인종차별적인 것으로 오해를 받을까봐 스스로 많이 조심하고 배우려고 노력해오고 있다.

 

 

 

난 세상이 보다 더 공평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서는 완벽한 공평함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물론 이미 존재하는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 Political Correctness들이 강조되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굳이 수십 종류의 인종별 카테고리를 억지로 만들어서  'BAME'이나 'People of Colour' 같은 용어로 이름표를 붙이고 서로 다른 인종으로 나누어 보려는 시선부터 없애는 것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난 사람들을 만났을 때 굳이 어느 인종인지부터 먼저 구분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한 인격체로서 그냥 서로 이름만 불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현실이 더이상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 날까지

모두 건강하시고 서로를 배려하시기를...

 

 

 

 

PLEASE STAY SAFE & BE 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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