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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일상

‘착한사람' 이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4월 중순에 들어서자마자 일주일 동안 비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이렇게 소나기라도 한 번 안 온다는 건 영국에서 정말 유니콘을 보거나 돼지가 하늘을 나는 정도로 거의 기적에 가까운 날씨이다. ㅋㅋ

 

Oh So Pretty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일주일 동안 드디어 봄이 왔나 보다 하고 생각될 정도로 영상 15도까지 기온이 올라가서 모처럼 더운 날씨에 우리 집 아이들은 방과 후에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면서 신나했는데….

그런데 지난 주말부터 밤새 기온이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삼일 동안 눈까지 오고, 갑작스러운 우박에 서리까지 내렸다… 5월인데… 

이렇게 영국 날씨에 항상 뒤통수를 맞다 보면 굳은살이 생길 법만도 한데… 아무리 이곳에 오래 살고 있어도 하루에도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영국 날씨는  그저 경이로울뿐이다… ㅎ

 

Snow in April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사실 한동안 건강이 좀 안 좋았었다.

3주 전에 친구네 가족들을 우리 집에 초대한 일이 있다. 둘 다 대학에서 일하는데 그 집 아이들과 우리 집 아이들이 연령대도 비슷하다 보니 유치원(만 3살-4살)부터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까지 10년 가까이 같이 다니고 있다.

우리 부부도 바쁘지만 그 집도 지난 몇 년간 이곳 대학에서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여파로 수업 이외에도 늘어난 업무량 때문에 항상 바쁘다 보니 최근에는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동안 전화로는 몇 번 통화를 했어도 서로 얼굴을 못 본지가 벌써 한 석 달 이상이 되어갔다. 그래서 남편이 그 집 아빠와 축구 중계도 같이 보면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며 겸사겸사 우리 집으로 초대를 했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는 그녀의 안색이 좀 창백해 보였다. 며칠 전 전화 통화를 통해 요즘 그녀가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을 다닌다는 것을 알긴 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은 몸 상태가 그나마 나은 거라고 했다.

선천성 당뇨로 평생 동안 건강관리를 그렇게 잘 해오던 그녀는 작년부터 이런저런 일로 병원에 진단을 받으러 자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2월에 아이들은 물론 그녀까지 온 식구가 감기를 좀 심하게 앓고 나서부터 약한 천식 증상까지 생긴 것 같고, 높아진 혈압을 조절하기 위해 약까지 먹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눈가가 푸르게 보이고 붓기 시작하더니, 둘째 아이가 최근에 또  감기가 걸려서 자기도 옮았는지, 저녁만 되면 시작되는 기침이 이젠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최근엔 호흡까지 곤란했던 적도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새로운 약의 부작용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되어 약을 바꾸었는데도 별 차도가 없다고 했다. 더구나 전날 밤에는 호흡이 너무 힘들어서 남편이 천식이 심할 때만 사용하는 inhaler를 사용하고 난 뒤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병원에 검사를 받기로 하고 금요일에 병가를 하루 냈는데, 하필 그날 이곳의 교육기관들을 평가하는 Ofsted (영국의 교육기관을 감사하고 세밀히 평가해서 일반에게 공개하는 일종의 영국 교육기준청)에서 방문하겠다고 3일 전에 통보가 와서 아픈데도 불구하고 병원 약속을 취소하고 그날 출근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2주 뒤에야 다시 검사를 하기로 날짜가 잡혔는데 너무 기운도 없고 몸이 이렇게 계속 안 좋으니 이젠 우울한 기분까지 든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아이들은 모두 위층으로 놀러 올라갔고, 남자들은 거실에서 축구 경기를 보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난방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자꾸 춥다는 그녀를 위해서 서재에 벽난로에 장작불을 피워 놓고 그 앞에 앉아서 우리 둘은 저녁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밤이 깊을수록 그녀의 기침은 점점 심해졌고 피곤해하는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그래서 2주나 기다리지 말고 월요일 아침에 병원에 전화해서 당장 검사를 받는 것이 좋지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하지만그녀는 자기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불쑥 카프카(Franz Kafka)의 '변신 (The Metamorphosis 또는 The Transformation, 독일어로는 Die Verwandlung)'이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꽤 알려진 이 책을 이곳 영국에서는 읽기는커녕 그런 작가나 책이 있다는 것을 들어봤다는 사람조차 별로 만난 적이 없다. 미술과 문학을 전공한 남편도 카프카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었고, 대개의 영국 사람들은 같은 영어권인 미국의 문학이나 미국의 시인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녀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The Metamorphosis' by Franz Kafka, 1915

 



대학에 다닐 때 2년 정도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동아리에 잠시 가입해서 활동했던 적이 있는데, 카프카의 '변신'은 내가 처음으로 그 모임에서 토론을 주도할 차례가 되었을 때 몇 번을 정독했던 책이다. 당시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던 나에게,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정말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Gregor는 경제능력을 상실한 온가족들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기 위해서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힘들지만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헌신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끔찍한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걱정보다도 자신이 직장에 나가서 일을 못하게 되면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에 더 걱정을 한다.

하지만 그의 변해버린 모습을 발견한 가족들은 걱정은 커녕 그의 변한 모습을 혐오스러워하고 경멸한다. 그의 가족들은 더 이상 경제적인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게 된 그를 벌레처럼 취급하면서 더 이상 존중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가급적 마주치지 않으려 하며 점점 무관심해진다. 

그런데 경제적인 능력이 전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가족들은 직장을 구해서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 벌레로 변한 이후에 자신의 방에 갇혀 지내며 그동안 자신이 돌보아왔던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소외를 당하며 비참함을 느끼던 Gregor... 어느 날 방에서 나와서 가족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호소해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그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그 상처로 인해 죽게 된다.

그의 죽음 이후 가족들은 모두 교외로 나가 모처럼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자신들의 희망적인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

 

가끔 자신이 없으면 마치 자기 주위의 세상이 잘 안 돌아갈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우선, 자신의 우월감이나 교만함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즉, 자신이 그 일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자신이 나서서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해야만 회사나 가정 또는 내 주변의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유형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불안해서 다른 사람에게 일도 제대로 못 맡기고, 혹시 맡기더라도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이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 이런 사람의 경우는  끊임없이 간섭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본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주변에 충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갖기가 어렵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지나친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지나친 부담감 및 희생정신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Gregor처럼 자신이 나서서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어 그들이 더 힘들어하고 어려울 것 같아서,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이 어떻게든 다 해보려고 하는 유형이다.  일종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 같은 거라고나 할까… 

마음이 여리고 착한 그녀가 몸이 이렇게 아파도 일 때문에 병원에 갈 시간조차 희생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부서의 책임자로서 다른 직원들에게 부담이라도 주게 될까봐 미안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반나절 동안 자리를 비워도 직장에 아무 일 없을 테니,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챙기라고 했다.

더구나 우리 나이가 되면 우리의 건강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문제가 되니 괜히 아픈 것 참지 말아야한다고... 더구나 이렇게 오래 지속된 증상이니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감기는 아닌 것 같으니,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꼭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날 저녁 자기 남편이 와인 몇 잔을 마신 탓에 겨우 10분 남짓 거리이긴 하지만 몸 상태가 안 좋은 그녀가 운전을 해서 집에 가는 것을 보면서 그저 착하기만 한 그녀에게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을 보내 놓고 같이  설거지를 하던 남편은 그렇게 아파 보이던데, 그녀가 자기 부인이었으면 오늘 저녁 약속 취소하고 집에서 푹 쉬도록 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평소 정말 아내바라기라는걸 우리 부부는 너무나  잘  안다. 

분명히 그녀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남편에게는 애써 괜찮은척 했을 것 같았다. 나는 착하기만 한 그녀가 오랜만에 한 저녁 약속을 취소하기엔 우리 부부에게 미안하고, 오랜만에 만날 생각에 들떠 있는 아이들을 실망시키기도 미안하고, 오랜만에 남편들끼리 같이 축구를 본다는데 실망시키는 것도 미안해서 온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다음 날 저녁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내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걸 보니 감기도 아닌 것 같다고 한 말이 계속 맘에 걸렸다고 했다. 그날 저녁에도 컨디션이 안좋아서 결국 아침에 의사에게 갔더니 폐렴 (pneumonia)이라는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다행히 상태가 심하지는 않아서 일단 1주일 동안 항생제를 복용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는데, 그녀의 당뇨병 때문에 입원을 할 경우 혹시라도 병원에서 super bug인 MRSA 같은 것에 감염이 되면 더 위험하기 때문에, 집에서 당분간 무조건 쉬라고 해서 일단 일주일간 병가를 냈다고 했다.

그녀는 이제는 뭐가 문제인지 알았으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 가라고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ㅎ

 

 

Beautiful Frost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문제는 3일 후부터 내게도 감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감기 같은 것에는 잘 안 걸리는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한 9일 정도 독감 비슷한 증세로 누워 있었다. 보통 아프면 식욕이 없어지는데 이번엔 왜 하필 김치 넣고 끓인 콩나물국이 그렇게 먹고 싶어지던지… 더구나 콩나물은 한인수퍼도 없는 이곳에선 구경도 못하는데 왜 하필 그것이 먹고 싶던지… ㅠㅠ

결국 의사에게서 처방받은 항생제가 다 떨어졌을 때쯤 증상이 많이 호전되긴 했는데, 그 후에도 며칠 동안 그냥 기운이 없어서 집에 오기만 하면 축 늘어져서 잠만 계속 잔 것 같다. 

 

그런데 평소에 지독한 불면증 때문에 늘 잠이 부족했었는데, 덕분에 그동안 쌓였던  Sleep Debt가 거의 다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ㅎㅎ 

물론 내가 아팠던 그동안 미처 처리 못한 밀린 일들이 잔뜩 쌓였다. 그리고 아파서 누워있을 때는 밖의 날씨가 그렇게도 좋은데도 못 나가서 속상했는데, 막상 다 낫고 나니 장대비에 우박, 서리까지 내리더니 급기야 눈까지 내린다… :(   

그래서 인생은 끈임없는 덧셈과 뺄셈의 연속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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