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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일상

시간의 소용돌이….

2주간의 부활절 휴가가 어느새 끝나고 아이들도 오늘부터 여름 학기를 시작했다. 올해는 별로 한 일도 없이 벌써 부활절 휴가가 끝나버려서 좀 어이가 없는 느낌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속도가 거센 소용돌이처럼 실제 피부로 느껴지는 요즘의 일상이다. 

Time ©2016 Lady ExpatTime.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남편이 이번 달 내내 마감일로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이번 휴가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짧은 주말여행을 할 여유조차 없이 그냥 지나가서 정말 아쉽긴 하다. 모처럼 방학이라도 남편이 외아들이어서 시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것 말고는 이곳에서는 방문할 친척도 사촌 형제도 없는 우리 아이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우리 아이들과 같이 하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길기만 할 것 같은 2 주간의 방학 기간 동안, 그동안 바쁜 생활 속에 미루어왔던 치과, 안과 등의 정기 검진 등을  아이들과  같이 받고,  그동안 바빠서 못 본 친구들 가족들과 점심도 같이 하고, 공원에서 아이들과 롤러블레이드도 같이 타고, 베이킹도 같이 하면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또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던 Goosebump라는 영화도 극장(영국에서는 cinema라고 함)에 가서 같이 보았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우리 가족이 다음에 같이 볼 영화는 5월에 개봉되는 Alice through the looking glass로 만장일치로 이미 아이들과 합의된 상태…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사실 내가 더 보고 싶어서 기다려지는 영화다. ㅋ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책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집에 오자마자 책까지 주문해 놓았다. ㅎ 


"The Future is something 

which everyone reaches at the rate of sixty minutes an hour, 

whatever he does, whoever he is." 


- C.S. Lewis -


다행히 이번 주는 날씨도 좋아서 겨우내 미루어 두었던 정원도 정리하기 시작하고, 동네 가든 센터에 가서 사온 몇 가지 꽃도 심으면서 정원일도 시작할 여유가 좀 있었다. 그런데 새로 정리해서 꽃을 심은 화단을 이웃의 고양이들이 화장실로 이용하기 시작해서 골치를 앓고 있다. 특히 옆집의 검은 고양이 Salem… (Sabrina, the Teenage Witch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고양이랑 닮아서 우리 집 아이들과 내가 그냥 부르기로 한 이름이다.) 며칠 동안 고양이가 싫어한다는 레몬이며 오렌지 껍질을 뿌려도 전혀 포기할 마음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백기를 들기로 했다. 꽃들이 좀 크게 자라면 그 녀석도 흙을 파기가 힘들 테니 그냥 그때까지 포기하고 기다리기로… ㅠㅠ



Le Chat Noir. ©2016 Lady ExpatLe Chat Noir.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지난주에는 아이들 학교의 친한 엄마들 몇 명과 아이들을 위해서  오랜만에 Play date ( 부모들이 미리 약속을 정해서 아이들이 같이 노는 것) 약속을 정해서 다 같이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아침부터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진데다 먹구름까지 끼었지만, 다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서로 얼굴 볼 기회가 자주 없는데 모처럼 잡은 약속이어서,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강행하기로 하고 공원에서 만났다. 


Golden light. ©2016 Lady Expat.Golden light.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서 무척 쌀쌀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바람을 그나마 피할 수 있는 놀이터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서, 가져온 간식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한동안 나누지 못 했던 수다로 깔깔거리며 오전을 보내기도 했다. 더구나 이 엄마들과는  이번 휴가 기간 동안 쉬는 날  서로 돌아가면서 집으로 아이들을 초대해서, 지난 2주 동안 아무래도 제일 많이 본 반가운 얼굴들이 아닌가 싶다. 


Friends. ©2016 Lady Expat.Friends.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맞는 학부형들과도 꽤 친해지게 되었는데, 이들 중 몇 명과는 이제는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혹시라도 일에 묶여서 아이들을 제시간에 픽업하지 못하는 경우, 서로 전화해서 아이들을 부탁할 수 있을 정도로 믿고 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외국에서 사는 expat들은 아마도 다들 겪는 과정이겠지만,  외국에서 살면서, 특히 외국 생활 초기에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삶의 목적이 희미해 잠시 방황하거나 좌절감이 들 때도 있는데, 배우자 이외에 이렇게 서로를 의지할 수 있고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을 찾기까지는 그 외로움을 대부분 혼자 견뎌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겐 아이들 덕분에 만나게 된 이러한 학부형들과의  따뜻한 인간관계가 자칫 외롭기 쉬운 외국 생활에 활력이 되는 인생의 또 다른 축복인 것 같다. 

Rooftop. ©2016 Lady Expat Rooftop.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이번 부활절 휴가가 평온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의 대모인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며칠 전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슬퍼하는 친구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무리 건강하게 오래 사셨어도, 비교적 고통 없이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어도, 다행스럽게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어도…. 이 모든 것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여야하는 사람들에겐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울먹이는 그녀를 위로하면서 결국 나도 그녀와 같이 울고 말았다. 이제 홀로 남으신 그녀의 어머니가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힘들어하시니, 정작 자신의 슬픔은 제대로 표현조차 못하고, 장례식 준비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을 더 걱정하는 그녀를 보면서 마음이 착찹했다… 그래서 모처럼 화창한 봄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도 며칠째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끝없이 가라앉기만 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젠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내가 한동안 마음속 깊이 묻어 놓고 애써 외면해 온 불안함과 강제로 마주하게 된다…   점점 연로해져가시는 부모님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일을 볼 때마다 결코 남의 일 같지가 않은 것 같다. 혹시 한국에서 전화가 올까 봐 밤마다 항상 전화기를 옆에 두고 볼륨이 켜지어 있는지 꼭 확인을 하고서야 잠이 든다… 가끔 늦은 밤에 전화가 울리거나 메시지가 오면 확인도 하기 전에 심장부터 뛰기 시작한다… 그래서 난 해외에 사는 것 자체가 불효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주말에 미사가 끝나고,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빌고 내친구가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어갈 수 있기를 비는 촛불을 밝히며, 그래도 아직까지는 고국에 계시는 부모님이 건강하시다는 사실에 새삼 너무나 감사했다. 

Memorial Rose. ©2016 Lady ExpatMemorial Rose.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슬퍼하는 친구를 지켜보면서 나도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을 추스리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오늘 아침, 여름 학기를 시작한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마냥 좋아하는 아이들을 부랴부랴 등교 시키고 나서,  문득 나도 다시 바쁜 생활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혜민 스님이 하신 말씀 중에 내 삶이 이토록 바쁜 까닭은 내가 바쁜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다. 바쁜 현재 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이런 저런 상념에 빠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Good News. ©2016 Lady Expat Good News. ©2016 Lady Expat (www.lady-expat.com)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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