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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일상

행복하다는 건 어쩌면 관점의 차이일지도...

지난 주말 몇 분의 블로그에서 우연히 돈가스와 그 소스 만드는 법을 본 후부터 갑자기 그 요리가 먹고 싶어 져서 오랜만에 마음을 먹고 토요일에 재료를 사러 가족들과 같이 나갔습니다.

모두들 대구 같은 흰 살 생선이나 닭으로 된 가츠 요리는 일식집이나 집에서도 몇 번 먹어 봤는데, 한 번도 돼지고기로 만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은 과연 맛이 있을까 미심쩍다는 눈으로 계속 'Are you sure?' 라며 몇 번을 되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원래 한국에서는 돼지고기로 만드는 것이 흔하고 지난번에 한국 가서 당신이 그렇게 맛있게 먹은 것도 돼지고기야.'라고 해도 우리 신랑은 분명 닭고기였다고 우기며 닭고기 진열장 주변을 맴돌았지만, 맛있을 테니까 한 번 믿어보라는 말에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닭고기를 포기하고 돼지고기를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거의 하지 않는 튀김 요리를 오랜만에 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리더군요. 식구들은 냄새를 맡고 배가 고프다고 자꾸 부엌을 들락날락 거리는데 소스까지 직접 만들다 보니 두 시간이 넘도록 요리를 한 후에야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그렇게 미심쩍어하던 신랑이 맛있다며 두 시간 넘게 걸려 만든 음식을 단 10분도 안 걸리고 식사를 끝내는 걸 보면서 약간 허무하긴 했지만 일단 잘 먹어주니 좋았습니다. 오래 기다리느라고 다들 배가 고프긴 했나 봅니다. ㅋㅋㅋ 

 

아이들까지 무척 좋아해서 말끔히 먹어주니 좋긴 한데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걸려서  평일에는 자주 못해 먹을 것 같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요리 블로거들의 글을 보고 요리법이 생각보다 쉬워 보이더라도, 실제로 만들어 보면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계속 맛있었다며 고맙다고 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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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다 끝난 뒤에 자기가 먹은 건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씻을 그릇이 많냐고 툴툴대며 설거지를 하는 남편을 다독이며, 저는 그 옆에서 슈퍼마켓에서 사 온 배추를 소금에 절이기로 했습니다. 지난 주에 한 블로거분이 올리신 김치에 관련된 글을 보고 김치를 좀 담아야겠다고 딱 두 포기를 샀는데 영국의 배추가 워낙 작아서 전부 1킬로그램도 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배추를 씻은 후에 소금을 뿌리다가 문득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를 떠올랐습니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서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소금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이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좋기도 하고, 이렇게 기록을 해 두면 저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Become a lake. Lady Expat.
Become a lake.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옛날 어느 나이 드신 스님이 세상을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매일 불평만 해대는 제자를 보다 못해, 하루는 그를 조용히 불러서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소금 한 움큼을 주면서 제자에게 작은 잔에 넣고 물과 같이 잘 섞으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제자는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스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 스님은 제자에게 그 물의 맛을 한 번 보라고 하였다. 제자는 그 물을 한 모금 마시자마자 얼굴을 찡그리며 물이 너무 짜다 못해 쓰기까지 하다고 했다.


그 스님은 다시 소금자루를 들고 제자에게 자기를 따라나서라고 했다. 스님이 제자를 데려간 곳은 근처의 작은 호수였다. 호숫가 가장자리에 도착한 스님은 제자에게 다시 한 움큼의 소금을 주면서 호숫물에 넣고 손으로 저으라고 했다. 제자는 오늘 스님이 참 별일을 다 시킨다고 툴툴댔지만 역시 시키는 대로 소금을 호수에 뿌렸다. 그러자 스님은 그 호숫물을 한 모금 먹어보라고 했다. 제자가 물을 마시자 스님은 그 물 맛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제자는 그냥 시원한 물맛이라고 대답했다. 스님은 그 물에서 소금의 맛이 느껴지느냐고 제자에게 다시 물었다. 젊은 제자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그제야 그 제자를 옆에 앉혀 놓고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하였다.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인생의 온갖 고뇌와 고통, 어려움들이 바로 이 소금과 같은 것이라고… 소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그런데 같은 양의 소금이라도 담는 용기에 따라 소금의 짠 정도를 달리 느낄 수 있다고… 

 

만약 네 인생이 고통으로 가득하고 쓴맛이 가득 느껴지거든,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삶의 고통을 포용할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넓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작은 잔으로 살지 말고, 호수 같은 큰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그제야 제자는 스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Become a lake. Lady Expat.
Become a lake.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인간의 삶에는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슬플 때도 있고 당장 죽을 것처럼 괴로운 일이 있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주 끔찍한 삶의 나락에서 깊은 절망감을 느끼면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삶을 경험하시는 분들에게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는 말이 아주 구태의연한 말로 들리거나 어찌 보면 더 화가 나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은 잔이 아닌 호수로 살라는 이 말이 삶을 살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극복하는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관점을 살짝 바꾸어 보니 삶의 고민이나 고통을 조금은 더 쉽게 대할 수 있었던 경험이나 지혜를 가지신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함박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 저는 출근길에 차가 밀릴까 봐 운전할 걱정부터 먼저 하게 됩니다. 걱정하는 저와 달리 제 옆의 아이들은 내리는 눈을 보면서 무척 예쁘다며 신이 나고 행복해합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눈 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할 생각에 마냥 즐거워합니다.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사람의 마음의 여유에 따라 함박눈은 걱정이나 짜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즐거움과 행복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평소에 무척 아끼시던 접시를 바닥에 떨어뜨려 깨뜨리고 나중에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시면 혼이 날까 봐 하루 종일 걱정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신 어머니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너 안 다쳤으니 괜찮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찾아온 안도감과 동시에, 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머니께서 깨진 그 접시보다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서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기억 때문에 저는 혹시 식구들이 같은 실수를 하면 아주 쿨하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초기에 신랑이 서툰 설거지 하다가 제가 아끼는 한정판 자기 그릇이나 유리잔을 몇 번 깨뜨려서 무척 미안해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에게 하는 말은 전에 제 어머니께서 제게 해 주시던 똑같은 말입니다. '그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니까 안 다쳤으면 됐지' 하고 그냥 스트레스 하나 안 받고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솔직히 좀 속상하긴 하죠... ㅎㅎㅎ  하지만 이미 깨어진 그릇을 다시 되돌릴 수도 없고, 일부러 한 것도 아니고 실수로 벌어진 일인데 화내야 소용없고... 이렇게 깨지는 그릇들이 있어야 그릇 장사도 먹고살지 하고 생각하면 그 속상함이 훨씬 덜 느껴지는듯 합니다. 

 

Creating Your Own Sunshine. Lady Expat.
Creating Your Own Sunshine @2016 Lady Expat (https://lady-expat.tistory.com) All rights reserved.


결혼 전에는 거의 말다툼 한 번 하지 않았던 저희 부부도 결혼 후에는 이런저런 일들로 여느 부부들이 그러하듯 가끔 의견 차이로  말다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솔직히 결혼 초기에는 그런 의견 충돌이 좀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강의를 듣는데 부부가 말다툼을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하더군요. 아니 어찌 보면 더 좋은 것일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TED Talk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황찬연 신부님 강의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젠 나이 먹어서인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이제부터는 더 자주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ㅎㅎ


어쨌든 뜻밖의 주장에 의아해했던 저는 그분의 설명을 듣고 정말 공감했습니다. 즉, 부부가 말다툼을 안 한다는 건 둘 다 솔직하지 않거나 아니면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한다는 이야기인데, 어느 쪽이 됐건 자기 입장도 제대로 못 밝히는 희생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가 아니고, 따라서 그런 관계는 오래 못 간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 둘이 만나서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데 부딪히는 건 당연하다고.. 그러니 결혼 초기에 서로 예의를 지키고 선을 넘지 않는 이상 말다툼은 서툴지만 오히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는 의사소통의 방법이고 상대방을 이해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신랑에게 그 이야기를 했지요. 앞으로는 더 열심히 싸우자고… ㅋㅋㅋ 

그 이후로는 이젠 말다툼을 해도 더 이상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해가 갈수록 그 횟수도 줄고 강도도 주는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는 걸까요?  아니면 그분 말씀처럼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되었기 때문일까요? ㅎㅎㅎ  

 

저도 완벽하지 않은데 신랑에게 완벽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저의 터무니없는 욕심이라는 걸 이젠 충분히 이해합니다. 모두 이제까지의 '열정적인' 말다툼과 '격렬한 (?)' 토론의 결과로 서로에 대해서 배운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ㅎ  같은 말다툼이라도 이렇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더 여유 있게 바라보면 그리 창피해할 일도 아니고  전적으로 나쁜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생각을 살짝 바꾸니 사실 문제 자체는 전혀 변한 것이 없는데도  왠지 그 문제가 많이 가벼워진 듯한 그런 경험들… 


저는 이런 것들이 호수로 살라는 그 스님의 가르침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삶의 고뇌나 어려움이 찾아올  때 그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씩 바꾸려는 연습을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제 마음이 더 넓어지면 인생의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어려움이 더 작게 보일 때 저도 그런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쉽게 대응할 수 있을 테고, 결과적으로  저뿐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의 삶도 조금은 더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배추 절이다가 생각난 소금에 대한 이야기가 좀 길어졌네요… 


매번 좀 간략하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짧은 글은 커녕, 없는 재주에 글 하나 쓰겠다고 횡설수설하며 이렇게 오랜동안 벽에 머리를 부딪히면서 글을 쓴다고 앉아 있으니… 절제된 글을 쓰기가 참 어렵다는 걸 오늘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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